보도자료

제목[익산칼럼] 상처는 상처로 치유된다 2019-01-28 10:14:52
작성자

(강주연 극동방송PD)


섭식(攝食) 혹은 식이(食餌) 행동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정신적인 문제를 섭식장애(Eating disorder)라고 부른다. 먹는 행위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이상행동을 보이는 정신장애인데 흔히 거식증으로 알려진 신경성 식욕부진증과 신경성 폭식증으로 나뉜다.


나는 젊은 시절 후자인 폭식증을 겪으며 좌절의 시기를 보냈었다. 외국에서 홀로 공부하며 성적과 진로, 그리고 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해서였는지 먹어도 허기가 졌고 결국 섭식의 장애가 왔다. 너무 많이 먹어서인지 아니면 많이 먹었다는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토하기를 반복했고 화장실에서 변기를 붙잡고 처참한 시간을 보냈다.


참으로 이상한 경험이었는데 심적 외상은 정말 무서웠다. 내 의지와 다르게 어느새 음식에 집착을 하고 구토를 하며 결국 혈압이 높아져 코피가 쏟아졌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느 누구 하나 도와줄 수 없는 나만의 상처에서 깊은 어둠에 사로 잡혔다.


결국 잠시 귀국을 하고 병원을 찾아갔다. 수차례 진행되는 상담시간 동안 난 의사에게 왜 배가 고픈지를 통곡을 하며 하소연했다. 내가 왜 배가 고픈지를 이야기 하며 진짜 문제는 다른 것이었음을.. 여덟 번째 상담이 끝나자 의사는 내게 이런 이야길 했다.


“문제의 원인은 ‘착한 딸 콤플렉스’입니다.”


부모님께 효도하는 좋은 딸이자, 공부도 잘 했어야했고, 친구들 사이에선 인기 많은 학우이자, 날씬한 외모를 유지하고, 타지에서의 바른 삶을 스스로 강요한 이 모든 부담이 식욕으로 변질됐다며 스스로를 받아드리라고 했다. 스스로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쉬운 방법을 스스로 찾지 못하고 1년이 넘는 시간 눈물로, 좌절로, 아픔으로 보낸 것이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며 기적처럼 섭식장애는 사라졌다.


최근 한 여성 모임에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주제 강연과 함께 아팠던 시절, 정신적 외상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놀랐던 것은 그 자리에 참석한 몇몇 분들이 찾아와 자신도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고, 우리 딸도 섭식 장애로 고생하고 있다고, 잊히지 않는 정신적 스트레스로 삶이 어렵다고, 이런 고백을 전하며 나의 상처 이야기가 그들에게 위로가 됐다고 한다. 뭔가 머쓱했지만 마음이 겸허해진 순간이었다.


라디오를 제작하고 진행하다보면 상상치도 못할 장소에서, 각각의 상황과 사정 속에서, 복잡한 감정들을 가지고 청취하는 분들을 마주하게 된다. 생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으로 참여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는데 그들의 아픈 이야기가 서로에게 치유가 되는 놀라운 일들도 접하게 된다.


5년 전 남편의 뇌출혈로 거동이 불가능해 집에서 라디오만 들으며 24시간 위로를 받는다는 한 어머니, 12년 만에 생긴 아이가 태어나보니 장애가 있어 5살인 지금도 걷질 못하지만 행복하다 말하는 젊은 아빠, 그리고 희귀병으로 아들을 데리고 매일 병원으로 출근하는 굳센 엄마, 5년 전 암으로 고생하다가 하늘나라로 간 아내가 보고 싶다며 편지를 보내온 어르신.. 서로의 사연으로 서로가 치유 받는다.


그러고 보면 상처를 마주한 순간은 처절했고 암흑 속을 걷는 암담한 아픔이었지만 그 기록으로 누군가의 이야기
를 함께 녹여낸다. 남이 모르는 상처일수록 상처 입은 자들은 서로를 알아보나보다. 
성경 로마서에선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한다. 아프고 힘겨운 환난이 결국 인내와 연단을 넘어서는 소망임을 누가 알았던가..


세상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상처로 다른 이들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면 이제는 자랑스러운 소망의 씨앗으로 바라봐야하지 않을까.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데이빗 그린버그(David Greenberg) 박사는 유년시절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 높은 공감능력을 가진다는 것을 발표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트라우마의 강도가 높을수록 감정적 공감능력 또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을 잃은 미망인을 가장 잘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을 역시 잃어본 사람의 말 한마디다. 당신의 상처는 그렇게 고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내가 아팠기 때문에 상대방의 아픔을 느낀다는 엄청난 공감의 능력, 그것이 상처가 또 다른 상처를 치유하는 원리인가보다.


이제 오는 4월 13일(토)이면 전북극동방송(FM91.1MHz)으로 개국을 하게 된다. 이제는 전라북도 전 지역의 청취자들과 함께 아픔을 희망으로 승화시키는 공감의 치유를 바라 볼 것이다. 그것이 라디오의 묘미 아니겠는가!


출처: 익산일보 (http://www.iksannews.com/default/index_view_page.php?part_idx=243&idx=42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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